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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숙은 작품의 타이틀을 <결 - 숨결, 물결, 바람결>로 칭하곤 한다. 이때의 결은 존재의 구조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드러내는데, 즉 존재란 단일의 총체로서 구조화된 것이기보다는 여러 이질적인 결들이 중첩된 다중적인 구조, 다층적인 구조, 다의적인 구조로서

드러난다. 이는 그대로 질 들뢰즈의 주름과도 통하는 것이다. 즉, 존재는 주름의 표면에 드러나 보이는 의식적인 주체인가 하면,

주름의 이면에 숨겨진 무의식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존재는 인식의 안쪽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언어적인 주체인가 하면, 인식의 안쪽으로 불러들일 수는 없는 비언어적인 주체, 욕망의 주체이기도 하다. 주제에 나타난 ‘결’이란 말하자면 존재의 결인 것이며, 이는 그대로 여러 이질적이고 심지어는 서로 상반되기조차 하는 존재의 중첩구조를 드러낸다.

또한 결은 전통적인 미적 관념인 기운생동(氣韻生動) 중 운과 관련되며, 리듬, 동세, 생명의 박동, 바이오리듬과 관련이 깊다. 작가는 존재의 숨결 속에서, 수면에 일렁이는 파문에서, 그리고 나뭇잎을 희롱하는 바람에게서 이 리듬의 단서를 발견한다.

리듬은 파문처럼 존재의 안쪽으로부터 바깥쪽으로 퍼져나가기도 하고, 공명처럼 존재의 바깥쪽으로부터 안쪽으로 잦아들기도 한다. 이렇듯 나진숙은 존재의 결, 주름, 리듬의 주제의식을 통해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떨림 현상을, 그 생명에의 환희를 전달해준다.

                                                                                                                                                                             평론가 고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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