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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관계_나진숙>

 

김승환(갤러리아쉬 큐레이터)

 

 

사람의 풀(glue)

풀을 만들기 위해선 쌀로 밥을 만들고, 밥에 더 많은 시간과 열을 가해 형태가 사라진 후 풀죽이 되어야 한다. 어떤 것을 붙이고 잇기 위한 재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듯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번거롭고 긴 과정으로 생성된 풀이 주인공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풀이라는 이름을 갖는 것들의 아지랑이 같은 숙명이다. 오랫동안 뼈를 고아 만드는 감칠맛의 정수처럼

마지막에는 형체 없이 사라지며, 순간의 맛이 여운만을 남길 뿐이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몇몇 동물은 개별적인 삶을

꾸려가지만, 나약한 육체를 지닌 인간은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지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종들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함을

지닌 인간만은 더 많은 번영을 이루어왔다. 그 이유가 높은 지능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또한 우리는 서로서로 당기며 함께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인고의 풀들을 쑤어 갔을까… 현재의 영화는 보거나 만질 수조차 없는 위대한 인내를 견딘 연대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나진숙의 풀(glue)

나진숙은 레진(resin)이라는 접착제를 이용하여 작업한다. 하지만 레진을 어떤 개체에 또 다른 무엇을 붙이기 위한 접합의 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결과물로써 주목할 수 없던 레진 그 자체의 물성과 색, 그대로를 표현한다. 어찌 보면 태생의 한계를 뛰어넘어 쓰임을 받는 풀이며, 자신의 의미를 자체로써 보여주는 자립의 풀이 된 것이다. 그렇게 그에 의해 독립된 풀, 레진은 물감과

붓으로 할 수 없었던 표현을 보여준다.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법을 먼저 터득한 풀(resin)이기에 그 감(感)의 깊이가 진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반복의 인내심으로 쑤어가듯 접착제 분사기(glue gun)에 열을 가해 작업 하는 그를 떠올리면 작가와 재료는 같은 본을 지녔다. 그와 풀의 조화가 감미(感美)로울 뿐이다.

 

살기 위한 모든 것

세상 모든 빛의 고향은 태양이다. 우리는 태양 빛의 반사를 기준으로 색을 나누고, 만들어간다. 단순히 색의 의미를 벗어나 생명의

합성과 흡수로 이어지는 길목의 반짝거림을 색이라 부르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몇 개의 어귀에는 이렇듯 빛이 존재한다. 공기는 모든 생명의 증거이다. 나무가 내보내는 것을 우리가 마시며, 우리가 내쉬는 것을 나무는 마신다. 자연이라는 놀라운 순환

속에 무색무취의 기체는 무엇보다 뚜렷한 의미의 맑디맑은 투명성을 지닌다. 그렇게 맑은 공기의 색채는 빛을 만나 은빛으로 발한다.

 

수(數)겹

그의 작품 속 여러 겹의 레진은 공기를 품고 있다. 공기가 우리 삶의 중요한 영양분이듯 그의 작품 또한 공기를 호흡함으로 살아나는 작품이 된다. 작업의 순간순간, 그의 날숨이 작은 공기 방울이 되어 레진의 겹 속에 괴어 들어갔다. 겹의 간(레진의 공간)은 공기를

품고 있으며, 은빛이 은 스스로 발광하는 것이 아닌 공기와 빛으로 빚어진 색이듯, 그가 바라는 삶의 원리를 담아 빛의 모양으로 닮은 것일지 모른다. 함께하는 마음이 인간이라는 가치를 더욱 윤기롭게 빛나게 하듯… 말이다.

 

다문다답의 퍼즐

나진숙의 작품은 여러 개의 사각형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형상(꽃, 원, 나무, 조개 등…)을 만들기도 하며, 서로가 다른 배열을 이루며 추상의 테를 창조해 나가기도 한다. 테를 만든다는 것은 어그러지며 깨지지 않게 묶어가는 것이다. 각 조각들은 의미 있는 다름으로 되살아난다. 퍼즐 큐빅 처럼 정해진 답은 우리의 인생 속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진숙의 작업은 여러 개의 조합과 구성을 바꾸어 가며, 다양한 답이 존재함을 일러준다. ‘다문다답’의 가능성, 그 다양성을 해답으로 담고 있다.

 

볼 수 있는 곳의 사각, 볼 수 없는 곳의 관계-사각관계

보이지 않는 곳은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보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관객의 시선을 붙이는 그의 작업은 고정이라는 접착 재료의 특성을 물질의 접착이 아닌 감정의 접착으로 전이시켰다. 전이된 감정은 더욱 눈으로 보기 힘들어졌지만, 마음으로는 그 무엇보다

분명한 모습으로 우리를 붙잡아 놓는다. 작품 상호 간의 유기적인 연결뿐 아니라, 작품과 바라보는 이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까지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어둠의 사각 속에서도 서로를 찾아낼 수 있는 관계의 불빛을 비추는 것이다.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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